[민경철의 검사수첩 (7)] 마약수사의 추억…“담배는 몸에 해로워서 안피운다”는 대마사범

담당자 2023-09-04 14:17




인천지검 강력부에서 마약사건 전담 검사로 근무할 때다. 마약전담 검사는 경찰에서 송치하는 사건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정보를 입수하여 하는 수사, 즉 인지수사도 해야 한다. 인지사건 실적이 없으면 검사는 상당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천지검에는 마약수사관들이 굉장히 많은데, 검사 한명에 소속된 마약수사관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10명 이상의 수사관을 지휘하면서 실적이 없다는 것은 지휘부에 상당히 미안한 일이고, 그래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약담당 검사실의 실적이라는 것이 하루에 몇 건씩 일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달 동안 한건도 없을 때도 있지만, 일단 수사가 개시되면 줄줄이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그 무렵에는 인지할만한 사건 자체가 많이 없어서, 검사와 수사관들은 서로 만나기조차 뻘쭘한 상태였다. 검사는 수사관한테 “나가서 정보라도 수집해야지 왜 사무실에 가만히 있는 거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게 되고, 수사관들은 “없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 어학열풍 속 원어민 강사 ‘대마파티’ 정보 입수해 수사시작

 

당시는 어학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원어민 강사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와서 어학원 강사로 자리매김하면서 예전에는 없던 범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원어민 강사들이 한국에서는 대마를 구하기 힘드니까 대마초를 자국에서 항공택배로 몰래 들여와서 대마초 파티를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정보가 입수되고, 수사착수가 결정되면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항공 택배는 결국 세관을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수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세관과 긴밀하게 협조를 해야 했다. 인천공항 세관에 “항공택배를 각별히 조사해서 대마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자”라고 특별히 당부했고, 결국 어떤 택배 포장물에 대마초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대마든 필로폰이든 마찬가지다. 마약이 택배 화물 속에 들어있는 것이 확인되면 풀었던 택배를 다시 포장해서 배달원을 가장한 수사관들이 택배에 기재되어 있는 장소로 배달하는데 이것을 ‘통제배달’이라고 한다. 수사관들은 택배를 배달하고 그 장소에 잠복근무를 한다.

 

배달지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사람이 있어서 그 배달물을 수령하면. 잠복해있던 수사관들이 수취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수취인이 체포돼서 검사실로 오면, 그때부터 검사와 수취인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자기가 대마를 외국에서 들여왔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에 하나도 있을까 말까한다. 대부분 “난 모른다. 난 택배로 대마를 보내달라고 한 적이 없다. 이 택배가 왜 나한테 왔는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검사는 설득이나 여러가지 조사기법을 통해 부인하는 택배 수취인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

 

■ 48시간 안에 자백 받아내야…한 명 잡히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검사한테 실질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체포시각으로부터 48시간이다. 48시간이 체포 시한이고, 사안이 중한 경우 48시간 내에 구속 영장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체포된 피의자는 구치소로 들어가야 한다. 구치소로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구치소 직원들의 계호(戒護)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피의자를 데리고 현장에서 수사하기는 어려워진다.

 

48시간 안에 자백을 받는 데 성공하면 그 다음 수사가 가능해진다. “대마 혹은 필로폰을 했으면 같이 한 사람이 있을텐데 누구와 함께 한 것인가요” 이렇게 물었을 때 자백한 사람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 했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한명, 어떤 사람은 대여섯 명을 진술하는 사람도 있다.

 

공범자에 대한 진술이 확보되면 그 자백하는 사람의 전화로 공범자들한테 전화해서 어디에서 보자고 한다. 주거지가 명확한 사람은 그 집에 가서 데려오기도 하는데, 주거지가 명확치 않거나 어디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불러내야하기 때문이다.

 

수취인을 데리고 가서 카페 같은 약속장소에 앉혀놓고 수사관들은 옆에 손님으로 가장해서 있다가 상대방이 오면 체포한다. 이렇게 한 명을 잡고나면 또 다른 관련자들을 수사하기 위해 사건은 긴박하게 흘러간다. 또 다른 사람 잡고, 그 사람 상대로 또 조사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또 잡으러가고. 마치 고구마 줄기에서 고구마 딸려 나오듯이 관련자들을 수사하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사범 한 사람 잡기가 어려운 것이지, 그 진술에 따라 공범들이 수십명까지 검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사나 수사관들은 그때부터가 전쟁이다. 수사관들은 나가서 잡아오고, 검사는 자백받고 공범을 확인하고...

 

■ 언어‧문화 다른 외국인 수사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

 

외국인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다보니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다. 내국인을 수사하는 건 별 문제 아닌데, 외국인을 수사할 때는 통역을 써야 한다. 그 당시에는 원어민 강사들이 주로 영어권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쓰는 통역인을 동석시키고 조사를 했다. 혹시 검사가 영어를 할 줄 알더라도 통역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영어가 능통한 검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검거된 사람을 조사해야 하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통역인을 통해 조사를 하다보면 피조사자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지를 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피의자한테 검사가 직접 질문하면 충분히 그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지만 통역인한테 “사정이 이러이러하니까 당신이 지은 죄를 정확하게 사실대로 얘기하는게 좋다고 통역해주세요”라고 하면 통역은 해주어서 취지는 전달되지만 조사자의 뉘앙스가 전혀 살지 않았다.

 

검사가 추상같이, 직접 영어로 “컨페스(Confess, 자백해!)!"라고 호령을 하거나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사람한테 “당신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이게 당신이 주문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게 당신한테 배달될 수 있다는 건가요”라고 질책하는 것과, 통역인한테 “이렇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해서 통역이 전달하는 것 하고는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뒤로 그때 처음으로 “영어가 반드시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래 잘 하지도 못하지만 그나마도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영어를 그때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한민국 영어교육은 읽고 쓰는 영어였지 듣고 말하는 영어가 아니었다. 검사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지만, 듣고 말하는 영어를 잘하는 검사는 없었다. 물론 요즈음 검사가 되신 분들은 영어에도 능통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비엔나에서 열리는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 UN Office on Drugs and Crime) 주최 국제 마약회의가 있는데, 대한민국 검사대표로 나간 적이 있다. 발표든 대표들간의 대화든 모두 영어로 해야되는데 영어실력이 짧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많이 위축되면서 많이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 담배가 자백을 받아내는 특효약?

 

과거에만 해도 검사실에서 가끔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있었다. 나의 초임검사 시절에는 검사실이 담배연기로 뿌연 경우가 많았다. 검사도 피우고, 수사관도 피우고, 검사실이 너구리 잡는 굴처럼 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언젠가부터 검사실에서 담배가 사라졌다.

 

검사들이 가끔 사용하는 수사기법 중 하나가 담배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검사에게 조사받는 동안 몹시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여서 담배가 몹시 피우고 싶어진다. 용의자나 피의자를 치열하게 추궁하다가 자백할 무렵이 되면 검사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조사받는 사람한테도 담배를 권한다. 같이 담배를 피면서 “사실대로 이야기합시다” 말하면 심리적으로 우르르 무너지면서 사실대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마약사범인 외국인 원어민 강사들에게도 담배를 줬다. 대마를 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담배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원어민 강사의 대답이 너무나 뜻밖이었다. “검사님 저는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담배는 굉장히 몸에 해롭거든요”.

 

대마는 하는 사람이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안 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아니, 대마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담배는 안피우냐”고 했더니, “대마는 기호식품이라서 가끔 파티에서 하는것이지 담배처럼 매일 하는게 아니어서 몸에 그렇게 해롭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충격과 더불어 “아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마에 대해서는 각국마다 법률이 천양지차다. 요즘은 옛날같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대마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한 나라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상당수 주 등 합법인 지역도 많다. 어떤 나라는 그냥 과태료나 벌금 정도고 경미한 범죄로 처벌하기도 한다. 팔거나 영리적인 목적으로 다루는 건 중대한 문제로 보지만 그냥 피우는 것 정도는 경미하게 처벌하는 나라가 꽤 있다.

 

그 원어민 강사도 그런 나라에서 자라서, 대마를 즐기던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이렇게 엄격한 줄 모르고 대마하다가 구속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이 사람들한테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 너희 나라는 법률과 제도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교육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수십명의 외국인 강사들을 기소하면서, 이 사람들도 다 자국에서는 귀한 자식이고 귀한 남편이고 아내일텐데 형사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도적 차이점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다. 그 당시 인천과 경기지역은 외국인 강사들이 구청에 등록을 해야했다. 등록된 원어민 강사들을 전부 인천지검 대강당으로 가능하면 나오라고 연락했다.

 
민경철 인천지검 마약담당 검사가 2008년 1월 외국인 원어민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마약관련 법률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그때 각국의 대사관은 물론 나도 직접 원고를 써서 강연을 했다. “여러분의 나라와 우리나라는 이렇게 차이가 있다. 당신 나라에서는 대마를 피는 것이 큰 죄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선 큰 문제가 된다. 외국에서 처벌받으면 굉장히 두려운 일 아니겠느냐.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은 대마하지마라”. 당시 이런 내용의 교육이 형사처벌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 마약에 손댄 삶은 피폐 그 자체…젊은이들 신종마약 퍼지는 풍조 안타까워

 

마약검사를 오래했지만 마약사범은 단속만으로는 근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마약청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국민들 사이에서 ‘마약 근처만 가도 패가망신 한다’ 이런 공감대가 오랫동안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처벌수위도 예전보다 굉장히 낮아졌다. 대마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초범은 거의 구속하지 않는 실정이다. 용서도 해주고 벌금형에 그치기도 하니까 마약사범이 다른 재산죄를 저지른 일반사범처럼 취급되는 느낌이 든다.

 

또 마약사범들을 범죄자라기 보다 환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인권의식의 강화 등으로 인해 마약수사가 옛날보다 증거법적으로 더 엄격하게 보니까 수사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있어서인지 “이거 해도 괜찮은 것 아냐?”라는 의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어서 매우 걱정스럽다. 엄격한 단속이 부작용도 있지만, 엄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마약검사를 하면서 느낀점 하나는 정치가와 인기 연예인, 마약은 서로가 많이 다르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즐거움, 쾌락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돼도 재선, 삼선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고, 연예인이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기간도 장기간 유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약을 하고 싶어도 아침, 점심, 저녁 내내 마약을 할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한번 하면 그때는 좋지만 안하는 기간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마약사범들의 삶이 피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약을 하는 그 순간만을 위해 나머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필로폰처럼 강도가 높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은 불행의 정도가 그만큼 더 크다.

 

나는 우리 사회가 마약 청정국인 상태가 좀 더 오래 유지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 중심으로 신종마약이 급속히 퍼져나가는 실정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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